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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글 제목: (Mahāsi Sayādaw)30~33
전체글올린 게시글: 2015-12-29, (화) 11:30 pm 

가입일: 2015-01-30, (금) 10:13 pm
전체글: 103
PA¿ICCASAMUPPÆDA 30
30. NÆMARÞPA AND SALHÆYATANA
Næmarþpa conditions salhæyata. This is very profound and hard to understand. Here næmarþpa means the three cetasika khandhæs while rþpa refers to the four primary elements, the six physical rþpas, jøvita (life), rþpa and nutriment (æhærarþpa).
Næmarþpa leads to salhæyatana or five physical sense-organs, viz., eye, ear, nose, tongue, body and consciousness. These æyatanas are the doors (avara) that lead to vøthi process. In the immaterial world every citta- unit throughout the whole life is born of associated cetasika. But for ordinary persons this will remain bookish knowledge as it is to be understood only by Ariyas in the immaterial world.
Further, in any existence like human life that has both næma and rþpa every vipæka-citta that arises from the time of conception is also due to associated cetasika, Vipæka citta means the kind of citta that barely sees, barely hears, etc., the pleasant or unpleasant objects. Here the seeing citta cannot arise by itself for it presupposes manasikæra that considers the visual object, phassa that contacts the object and cetanæ that strives to see it. The seeing citta can arise, only when these concomitant cetasikas arises collectively at the same time. This is consciousness condition called sahajæta Paccaya in Pæ¹i. Thus a load that can be raised only by four men working together will not move up if the team leader tries to move it alone. Like-wise, although viññæna is the mainspring of mental life it counts for little by itself. It can function only together with other mental factors.
Moreover, these associate cetasikas contribute to the five physical æyatanas, viz., eye, ear, etc. by consciousness at the moment of rebirth. Of course at the time of conception there is only kæya or rþpa. But in other kinds of rebirth that do not involve the mother’s womb, there may be all the five æyatanas at the beginning. The conditioning of the æyatanas by viññæ¼a and cetasikas at the moment of conception is hard to understand but we have to accept on the authority of the Buddha. At other times vipæka as well as the non-vipæka cittas help to maintain the æyatanas. This is understandable since it is impossible for matter to exist without mind.

30. 정신-물질[名色]과 여섯 감각장소[六入]
정신-물질[名色]을 원인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생겨납니다. 이는 참으로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정신(名 nāma)은 세 가지 마음부수(cetasika)의 무더기인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인 반면 물질(色 rūpa)은 네 가지 근본 요소[四大], 여섯 감각장소[六入], 생명, 음식111의 물질을 가리킵니다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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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음식(āhāra)은 지탱하는 상태로 떠받쳐주는 것을 뜻하며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1) 덩어리로 된 음식(段食 kabaḷīkāra-āhāra): 육체적인 몸을 지탱해준다.
(2) 감각접촉의 음식(觸食 phassa-āhāra): 느낌을 지탱해준다.
(3) 의도의 음식(意思食 manosañcetanā-āhāra): 삼계에 태어나는 것을 지탱해주는데 의도는 업이며 업은 재생을 일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4) 식의 음식(識食 viññāṇa-āhāra): 정신-물질의 합성체를 지탱해준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1) 덩어리로 된 음식[段食]은 몸에서 네 가지 원인으로 생기는 물질적인 현상을, 나머지 (2)(3)(4)는 그 각각과 함께 일어나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현상을 지탱해준다. 여기서 덩어리로 된 음식[段食]은 물질이므로 무기이고 나머지 세 가지 정신적인 음식은 선(善), 불선(不善), 무기(無記)의 셋에 다 해당된다.

112. 12연기의 요소 중 하나인 정신-물질[名色]은 식을 조건으로 일어남은 앞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식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정신-물질이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본다. 정신(nāma)은 과보의 마음과 연결된 마음부수들을 뜻하고 물질(rūpa)이란 업에서 생겨난 물질들을 의미한다. 오온(五蘊)이 다 있는 존재의 식(識)은 정신-물질[名色] 둘 다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색온(色蘊)이 없는 존재, 즉 무색계에서 식은 오직 정신의 조건만 된다.
그리고 상온(想蘊)이 없는 중생인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은 식이 단지 물질의 조건만 된다. 오온을 모두 다 가진 존재는 재생연결의 순간 재생연결식이 일어날 때 그와 동시에 다른 세 가지 정신의 무더기들, 즉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이 일어난다. 물론 이때 특별하게 응고된 물질들도 함께 일어난다. 이 경우 사람에게는 몸과 성과 심장토대의 물질의 십 원소들이 해당된다. 식은 함께 존재하는 정신-물질의 요소들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기 때문에 식을 반연하여 정신-물질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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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물질[名色]을 조건으로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노[意]의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일어납니다. 이 여섯 감각장소의 문[六門]113을 통해 인식과정에 이릅니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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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여섯 감각장소의 문[六門]에서 문(門 dvāra)이라는 것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노[意]라는 여섯 감각기관[六根]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식(識)이 대상을 인지하는 통로 혹은 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식(眼識)은 눈[眼]을 문으로 하여 대상을 인지하고 같이하며 신식(身識)은 몸[身]을 문으로 하여 대상을 인지한다.
같은 방법으로 의식(意識)은 마노[意]를 문으로 하여 대상을 인지하는데 이때 마노의 문[意門]은 구체적으로 바왕가(bhavaṅga)이다. 이처럼 마노[意], 마노의 문[意門]은 순전히 정신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마노의 문[意門]으로 인지할 수 있는 법이라 불리는 대상은 감성의 물질, 미세한 물질, 과거의 마음, 52가지 마음부수법, 열반(유학과 아라한만), 개념이다.
그리고 이 여섯은 마음(식)과 마음부수들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때 이 여섯을 장소(處 āyatana)라고 하고 육처(六處)나 육입(六入)이라 한다. 각각의 영역에 해당하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기능 혹은 능력의 측면에서 고찰할 때는 그것을 기능(根 indriya)이라고 부르며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이렇게 그 기능과 역할 등에 따라서 이 여섯은 다르게 불린다. 그리고 마노[意]는 정신적 대상을 아는 감각기능[根] 혹은 감각장소[處]이다.
눈[眼]이라는 감각장소를 통해서 형상이나 색깔[色]이라는 대상에 대한 안식(眼識)이 일어나고 귀[耳]라는 감각장소를 통해서 소리[聲]라는 대상에 대한 이식(耳識)이 일어나듯이 마노[意]라는 감각장소를 통해서 정신적인 대상에 대한 의식(意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마노[意]는 정신적인 대상을 아는 감각장소 혹은 기능이다.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은 물질적인 감각장소이지만 마노[意]는 정신적인 감각장소인 것이다. 그리고 감각대상이란 식(識)이 일어날 때 의지하는 물질적 토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안식[眼識]은 눈[眼]이라는 감성의 물질을 토대로 하고 같이하며, 이식(耳識)은 귀[耳]를, 비식(鼻識)은 코[鼻]를, 설식(舌識)은 혀[舌]를, 신식(身識)은 몸[身]이라는 감성의 물질을 토대로 한다. 그리고 의식(意識)은 모두 심장토대를 토대로 한다.
여기서 요점을 간추리면 전오식(前五識) 즉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은 모두 문과 토대가 같다. 즉 안식(眼識)은 눈[眼]이라는 감성을 그 문으로 하고 눈이라는 감성을 토대로 하여 일어난다. 모든 의식은 반드시 마노[意]를 그 문으로 가진다. 즉 모든 의식(意識)은 반드시 심장토대를 토대로 하여 일어난다.
그러나 모든 의식은 그 문이 다르다. 그러므로 눈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식(意識)은 눈[眼]을 문으로 가지면서 심장토대를 토대로 한다. 귀[耳]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식(意識)은 귀[耳]를 문으로 가지면서 심장토대를 토대로 한다. 의문인식과정에서는 모든 의식(意識)은 마노[意]를 문으로 하고 심장토대를 토대로 한다.

114. 이를 인식과정(vīthi)의 첫 단계인 전향(āvajjana)이라고 한다. 전향에는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의 다섯 감각의 문[五門]으로 향하는 (1) 오문전향(五門轉向 pañca-dvāra-āvajjana)과 (2) 마노의 문[意門]으로 향하는 의문전향(意門轉向 mano-dvāra-āvajjana)의 두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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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계에서는 전 생애에 걸쳐 모든 마음단위들이 관련된 마음부수에서 생깁니다115.
하지만 이는 무색계의 성자들만 이해하는 것이므로 범부들에게는 이론적인 지식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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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욕계에서 정신-물질[名色]은 여섯 감각장소[六入/六處] 모두를 일어나도록 조건 짓고 색계에서는 눈[眼]과 귀[耳]와 마노[意]의 감각장소들만 일어난다. 무색계에서는 정신만이 마노의 감각장소[意處]를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무색계에서는 마노[意]만이 유일한 감각장소인데 다섯 가지 물질로 된 감각장소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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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사람처럼 정신과 물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중생은 수태하는 순간부터 일어나는 모든 과보의 마음(vipāka-citta)은 관련된 마음부수에서 기인합니다. 과보의 마음이란 즐겁거나 즐겁지 못한 대상을 그냥 보고 듣고 하는 등의 마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보는 마음은 형상에 주의 기울임[作意], 대상과의 감각접촉[觸], 대상을 보려고 하는 의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혼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보는 마음은 마음부수들이 집합적으로 동시에 일어날 때에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의 조건을 빨리어로 함께 생긴 조건[俱生緣]이란 뜻인 사하쟈따 빠쨔야(sahajāta-paccaya)116라고 합니다. 네 명이 힘을 합쳐야만 들 수 있는 짐을 팀장 혼자서 들려고 한다면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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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함께 생긴 조건(俱生緣 sahajāta-paccaya)은 24가지 (paccaya)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 뒤의 도표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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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식이 정신적 생명의 주요 동력이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마음 부수와 함께 하는 경우에만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련된 마음부수는 재생연결식에 의해 눈[眼], 귀[耳]와 같은 다섯 가지 감각장소에 기여합니다. 물론 수태의 순간에는 몸, 즉 물질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태를 거치지 않고 재생하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다섯 감각장소가 모두 있을 것입니다.

수태의 순간에 식과 마음부수에 의해서 다섯 감각장소가 조건 지어지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부처님의 권위에 근거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때에는 과보의 마음과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kiriya-citta)117, 두 가지가 모두 감각장소가 유지되는 것을 돕습니다. 이는 이해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마음 없이 물질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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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마음은 그 경지에 따라서 ① 욕계 마음(kāmāvacara-citta) ② 색계 마음(rūpāvacara-citta) ③ 무색계 마음(arūpāvacara-citta) ④ 출세간 마음(lokuttara-citta)으로 구분되고 종류에 따라서는 ① 불선한 마음(akusala-citta) ② 선한 마음(kusala-citta) ③ 과보의 마음(vipāka-citta) ④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kiriya-citta)으로 구분된다. 자세한 것은 본문 뒤의 도표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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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CCASAMUPPÆDA 31
31. RÞPA AND ÆYATANA
The rebirth consciousness arises on the basis of the heart (hadaya-vatthu). The mind æyatana has its basis in the eye, ear, etc. Thought and consciousness too have heart as their physical basis. All the secondary physical phenomena such as the eye, visual object, etc., depend on the four primary elements, viz., pathavø, æpo (solidity, motion) etc., The five pasæda. rþpa, i.e. eye, ear, etc. are rooted in the primary elements, and their kamma-based rþpas in jøvita (life-force) rþpa. The five æyatana rþpas too depend on nutriment (æhæra-rþpa).
To sum up, citta-viññæ¼a is conditioned by at least three mental factors, viz., manasikæra, phassa and cetanæ. Sometimes there arise repeatedly greed, craving, anger, illusion, pride, doubt, restlessness, worry, envy, ill- will, anxiety, fear and so forth. All these mental states arise because of unwholesome cetasikas. similarly there often occur faith, piety, moral sense, non-attachment, compassion, sympathetic joy (muditæ) appreciation of the law of kamma, reflection on anicca, dukkhæ, anatta, and so forth. These mental states arise from wholesome cetasiksa. Thus the yogø realizes the dependence of viññæna on wholesome or unwholesome cetasikas, the eye-consciousness on the eye. So it is clear that the manæyatana is dependent on næmarþpa.
The mind is also vital to the existence of living matter. So the five æyatanas that produce sense-organs are dependent on the mind. The sensitive sense-organs (pasæda) cannot exist without their gross physical bases just as the reflecting mirror cannot exist without the gross matter of glass.
So the eye presupposes the gross matter of solidity (pathavø), cohesion (æpo) heat (tejo) and tenseness (væyo), in short, the ability to see depends on the gross physical body of the eye. The same may be said of the ability to hear, the ability to smell, ets. Further, we can maintain life uninterruptedly only because of life-force (jøvita-rþpa) and nutriment. All these facts show how the five æyatana rþpas originate with næmarþpa.
The sixth æyatanas viz., manæyatana comprising thought, reflection, intention, etc depends on wholesome or unwholesome mental states such as greed, faith and mental factors such as phassa (contact) as well as on its physical bases. It arises from its root viz., bhava³ga which in turn forms the basis for the mind-process (manodværa-vøthi).

31. 물질과 여섯 감각장소[六入]
재생연결식은 심장토대(hadaya-vatthu)에서 일어납니다. 마노의 감각장소[意處]는 눈[眼], 귀[耳]등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생각과 식도 심장을 그 물질적 토대로 합니다. 눈[眼], 형상[色]등과 같은 모든 이차적 물질현상은 다 땅의 요소[地大], 물의 요소[水大], 불의 요소[火大], 바람의 요소[風大]와 같은 네 가지 근본 요소[四大]에 의지합니다.
눈[眼], 귀[耳]와 같은 다섯 가지 감성 물질(pasāda-rūpa)은 네 가지 근본 요소[四大]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생명의 물질(jīvita-rūpa)안에 있는 업에서 생긴 물질(kammaja-rūpa)을 기반으로 합니다. 다섯 감각장소의 물질도 자양분(āhāra)의 물질에 의존합니다.
요약하면, 마음과 식(citta-vinñāṇa)은 최소한 주의 기울임[作意], 감각접촉[觸], 의도의 세 가지 마음부수에 의해 조건 지어집니다. 때로는 탐욕, 갈애, 성냄, 환상, 자만, 의심, 들뜸, 걱정, 질투, 악의, 불안, 두려움 등이 되풀이 하여 일어납니다.
이 모든 마음의 상태는 불선한 마음부수 때문에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 동정, 도덕관념, 집착 없음, 연민[悲], 더불어 기뻐함[捨], 업의 법칙의 수용, 무상, 고, 무아에 대한 사유 등이 가끔 일어납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선한 마음부수에서 일어납니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식이 선하거나 불선한 마음부수들에 의존하고, 안식(眼識)은 눈[眼]에 의존함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마노의 감각장소[意處]가 정신-물질에 의존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음도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감각기관을 생성하는 다섯 감각장소는 마음에 의존합니다. 유리라는 거친 물질이 없이는 비추는 거울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성의 물질(pasāda)들은 거친 물질의 토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은 땅의 요소[地大], 물의 요소[水大], 불의 요소[火大], 바람의 요소[風大]라는 거친 물질을 전제조건으로 합니다. 요컨대, 보는 기능은 눈이라는 거친 물질인 몸에 의존합니다. 듣는 기능, 냄새 맡는 기능 등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생명물질(jīvita-rūpa)과 자양분이 있어야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다섯 감각장소의 물질(āyatana-rūpa)이 어떻게 정신-물질에서 비롯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생각, 조사, 의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여섯째 감각장소인 마노의 감각장소[意處]는 탐욕, 믿음과 같은 선하거나 불선한 마음상태와 감각접촉(觸 phassa)과 같은 마음부수들과 그 물질적 토대에 의존합니다. 그것은 감각접촉과 심장토대에도 의존합니다. 마노의 감각장소[意處]는 그 뿌리인 바왕가에서 일어나고, 이 바왕가는 의문 인식과정의 기반이 됩니다.

PA¿ICCASAMUPPÆDA 32
32. SUMMARY (요약)
To recapitulate. Seeing involves sensitive eye-organ and consciousness. The eye-organ depends on consciousness, life-force, nutriment and physical base. The eye-consciousness depends on the eye-organ and the three mental factors of reflection, striving and contact. In short, the eye as well as the eye-consciousness depends or næmarþpa and the same may be said of other five æyatanas.
A thorough knowledge of the origin of the six æyatanas on the basis of næmarþpa is possible only for the bodhisattas. Among the Buddha’s disciples even Særiputtræ and Moggallana did not seem to understand it comprehensively before they attained sotæpanna. For it is said that the ascetic Upatissa who was later to become Særiputta thera attained the first stage on the holy path on hearing the verse uttered by Assaji thera.
The verse, ascribed to the Buddha, says that all phenomena (dhammas) are the effects of certain other phenomena which are the causes. The Buddha points out these causes and there is the cessation of the effects together with the causes. Upatissa and his friend Kolita are said to have attained sotæpanna after hearing this verse but they could not have reflected deeply on the dependent origination in such a short space of time. One may fairly understand the Buddha’s teaching on the doctrine according to one’s intellectual capacity but it is impossible to grasp all of it fully.
The commentary explains the verse in the context of the four noble truths, “All the dhammas is the effect” refers to the truth of suffering as having its origin in craving. The cause in the gæthæ means craving as the cause of dukkha. So the gæthæ epitomises the truth about suffering and its cause.

In those days there were many views about the soul (atta) viz., that the soul was immortal and passed onto another abode after death, that it was annihilated after the final dissolution of the body, that it was created by God, that it was infinite and so forth. The gæthæ recognizes only the existence of the cause; and effect and denied the immortality or annihilation of the soul and this teaching afforded the two ascetics a special insight into the nature of life.
Visuddhimagga Mahæ¥økæ identifies this gæthæ with the teaching on Paticcasamuppada. It refers to a sutta in Samyuttanikæya which says, “If this cause arises, then that effect follows. If this cause ceases, then that effect is also ended. So avijjæ causes sa³khæra and so on until suffering becomes extinct.” According to the Mahætikæ, the substance of this teaching is implicit in the aforementioned gæthæ, in regard to both the arising (anuloma) and cessation (patiloma) of dukkha.
Mahayana pi¥aka describes this gæthæ as a sutta that sums up the doctrine of Paticcasamuppæda. Any writing of the gæthæ is said to be beneficial if it is enshrined in a cetiya (pagoda). No wonder that many of these writings are found in very ancient pagodas.
Both views in the commentary and Mahætikæ are plausible. For the first two noble truths imply Paticcasamuppada in respect of the arising of dukkha and its cause while the other two noble truths imply the doctring in respect of the cessaion of dukkha.
To sum up the cause and effects in the chain of causation. In the past life of a person ignorance leads to acts, speech and thoughts and these sa³khæras give rise to viññæ¼a. Then there are five effects in the present life, viz., viññæ¼a, næmarþpa, æyatana, phassa and vedanæ. These effects in turn become causes or in other words, they sow the seeds for future life, viz., craving, clinging and becoming (ta¼hæ, upædana and jæti). As a result there are old age, death, grief and suffering in store for the future life. Paticcasamuppæda is profound and this is borne out by the Buddha’s saying to Ænandæ.
Ænandæ reflected on the doctrine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and vice versa. To him it was very clear and it presented no difficulty. He approached the Buddha and said, “Lord, this Paticcasamuppæda is indeed very profound. But for me it seems so easy to understand.” The Buddha chided him, saying, “You should not say like that, Ænandæ.”
According to the commentary, the Buddha’s words imply a compliment as well as a reproach to Ænandæ. The Buddha meant to say in effect, “Ænandæ, you are highly intelligent and so it is easy for you to understand the doctrine but do not think that it may be equally easy for other people to understand it.”
Ænandæ’s ability to understand the doctrine was due to four factors, viz, the pæramø (perfections) which he had acquired in his previous lives, the instructions of his teachers, his wide knowledge and his attainment of the first stage on the holy path.
Long, long ago Ænandæ was prince Sumana, the brother of Padumuttara Buddha. As a provincial governor, he subdued an uprising successfully. The king was much pleased and told him to ask for any boon he desired. The prince asked for permission to serve the Buddha for three months during the lent. The king did no wish to grant this boon and so he said evasively that it was indeed hard to know the Buddha’s mind, that he could do nothing if the Lord was reluctant to go to the prince’s abode.
On the advice of the bhikkhus the prince requested a thera named Sumana, to arrange for an interview with the Buddha. When he met the Buddha, he told the Lord how Sumana thera had done a thing that was beyond the power of other bhikkhus. He asked what kind of good deeds a man should do to be so intimate with the Lord. The Buddha said that he could become like Sumana by practicing dæna and søla. The prince requested the Lord to spend the lent in his city as he wished to do good deeds so that he might become a specially privileged thera like Sumana in the holy order of a future Buddha. Seeing tha t his visit there might benefit all and sundry, the Buddha said, “Sumana, the Buddha loves solitude,” a saying that meant tacit acceptance of the invitation.

The prince then ordered over one hundred monasteries to be built along the route where the Buddha and the Sa³gha might rest comfortably at night. He bought a park and turned it into a magnificent monastery as well as other dwellings for the Buddha and numerous monks. Then when all was ready, he sent word to his father and invited the Buddha to come to his city. The prince and his people welcomed the Buddha and his followers and honouring them with flowers and scents led them to the monastery. There the prince formally donated the monastery and the park to the Buddha.
After performing this act of dæna the prince summoned his wives and ministers and said, “The Buddha has come here out of compassion for us. The Buddhas do not care for material welfare.
They care only for the practice of the Dhamma. I wish to honour the Buddha with practice so that he may be well pleased. I will observe the ten precepts and stay at the residence of the Buddha. You must feed and serve all the Arahats every day during the rain-retreat as I have done today.”

32. 요약
다시 요약합니다. 본다는 것은 눈의 감각기관[眼根]과 식(識)이 결부되어 나타납니다. 눈[眼]은 식과 생명기능과 자양분과 물질적 토대에 의존합니다. 눈의 감각기관[眼根]은 조사, 주의기울임, 감각접촉[觸]의 세 가지 마음부수에 의존합니다. 요컨대, 눈[眼]은 안식(眼識)과 마찬가지로 정신-물질[名色]에 의존하며, 다른 다섯 감각장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물질[名色]을 토대로 한 여섯 감각장소[六入]의 원인을 모두 아는 지혜는 오직 보살들만 가능합니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였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조차도 예류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을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사리풋따 장로가 된 우빠띳사(Upatissa)사문은 앗사지(Assaji)장로가 읊은 게송을 듣고 성자의 첫째 단계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원인을 가르치셨고, 원인이 소멸하면 그 결과도 소멸함을 가르치셨다.”118(Vin.i.40) 우빠띳사와 꼴리따(Kolita)는 이 게송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연기법을 깊이 있게 고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지적 능력에 따라 부처님의 연기법에 대한 가르침을 깊이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
118. 이 게송은 후에 불교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넓게 유포된 게송이 되었다. 연기법에 딱 들어맞는 게송이 없던 시기에 설해진 이 게송은 초기 불교도들의 마음에 가히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율장』(Vin.i.40) 에 나오는 앗사지(Assaji)장로가 읊은 게송과 그 빨리 원어는 다음과 같다.
“원인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법들,
그들에 관해 여래께서는 그 원인을 밝혀주셨네.
또 그들의 소멸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나니,
이것이 대 사문의 가르침이라네.”
Ye dhammā hetuppabhavā
tesam hetum tathāgato āha
Tesam ca yo nirodho
Evaṃ vādi mahā samano (Vin.i.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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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서는 이 게송을 사성제의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모든 법은 다른 법의 결과이다.”라는 말은 갈애에 그 원인을 두고 있는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게송에서 원인은 괴로움의 원인으로서의 갈애를 뜻합니다. 그래서 게송은 괴로움과 그 원인에 대한 진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영혼은 불멸하여 죽으면 다른 몸으로 이동한다든지, 육체가 무너진 다음에 영혼은 완전히 단멸한다든지, 영혼은 신이 창조했다든지, 영혼의 무한성과 같은 자아(atta)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 게송은 원인과 결과만을 인정하고 영혼의 불멸이나 단멸을 부정했으며, 이 가르침으로 두 사문은 삶의 본성을 꿰뚫는 특별한 통찰지가 생겼던 것입니다.
「청정도론」의 대복주석서인「마하띠까(Mahā-ṭikā)」는 이 게송을 연기법에 대한 가르침과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다음과 같은『상응부』의 한 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원인이 일어나면 저 결과가 일어난다. 이 원인이 멈추면 저 결과도 멈춘다. 그러므로 무명을 원인으로 상카라가 일어나고 괴로움이 있게 된다. 무명의 소멸과 함께 괴로움이 소멸할 때까지 상카라 등의 소멸이 뒤따른다.”「마하띠까」에 따르면 괴로움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의 두 가지 측면에서 연기법의 요지가 앞의 게송에 함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승불교의 경서는 이 게송은 연기법을 요약한 경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또 그 게송에 대한 글들을 탑묘119에 안치하면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많은 글이 아주 오래된 탑묘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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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탑묘(塔廟)로 번역한 쩨띠야(cetiya)는 만든 ‘기념물, 분묘’를 지칭하는 것이 일차적인 의미이다. 원래는 불교 이전부터 있었던 신성한 곳, 즉 영묘(靈廟)를 가리켰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불상이나 사리를 모시고 예배드리는 곳을 의미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지제(支堤)라고도 음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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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서와「마하띠까」의 견해는 모두 타당해보입니다. 왜냐하면 고제와 집제는 괴로움과 그것이 일어나는 측면에서 연기를 뜻하는 반면에 멸제와 도제는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측면에서 연기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인과관계의 사슬에서 원인과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생에서의 무명은 행위와 말과 생각의 원인이 되고, 이 상카라가 식을 생기게 합니다. 그러면 현생에서 식(識), 정신-물질[名色], 여섯 감각장소[六入], 감각접촉[觸], 느낌[受]의 다섯 가지 결과가 생깁니다.
인과의 사슬에서 원인과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생에서의 무명(無明)으로 인해 행위와 말과 생각이 나타나고 이러한 상카라[行]로 인해 식(識)이 생깁니다.
그러고 나면 현생에서 식(識), 정신-물질[名色], 여섯 감각장소[六入], 감각접촉[觸], 느낌[受]이라는 다섯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이 결과들이 이번에는 내생의 원인이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갈애와 집착과 태어남[再生]이라는 씨를 내생에 뿌립니다. 그 결과로 늙음, 죽음, 슬픔, 괴로움의 싹이 내생에 트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연기법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연기법을 순서대로 관하고 또 역으로도 관했습니다. 존자에게는 연기법이 너무나도 명확했으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연기법은 아주 심오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해하기 아주 쉽게 느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아난다야,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주석서에 따르면 부처님의 이 말씀은 아난다 존자에 대한 칭찬이기도 하고 꾸지람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말씀의 참뜻은 이런 것입니다. “아난다야, 너는 지혜가 출중하기 때문에 연기법을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남들도 너처럼 쉽게 이해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난다 존자가 연기법을 쉽게 이해한 것은 (1) 전생에 쌓아온 바라밀, (2) 스승들의 지도, (3) 폭넓은 지혜, (4) 예류과의 증득이라는 네 가지 요소에 기인합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 아난다는 빠두뭇따라 부처님(Padumuttara Buddha)120의 동생인 수마나(Sumana)의 왕자였습니다. 지방 영주였던 왕자는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왕자에게 원하는 바를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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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빠두뭇따라 부처님(Padumuttara Buddha)은 과거 24불 가운데 10번째 부처님이다. 태어나는 순간과 깨달음을 이루는 순간 1만세계에 연꽃의 비가 내렸기 때문에 빠두뭇따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부처님 재세 시에는 외도(外道)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또 아난다(Ānanda) 존자를 위시한 고따마 부처님의 여러 이름난 제자들이 빠두뭇따라 부처님 당시에 그러한 지위를 얻고자 하는 서원을 처음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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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안거 석 달 동안 부처님을 시봉하기를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왕은 이 소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서 부처님의 마음은 참으로 알기 어렵다고 하면서 세존께서 왕자의 거처로 가는 걸 내켜하지 않으신다면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비구들의 조언에 따라 왕자는 수마나 장로에게 부처님과의 면담을 주선해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을 뵌 왕자는 세존에게 수마나 장로가 어떻게 다른 비구들의 능력을 넘어선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선업을 지어야 그렇게 세존과 긴밀한 관계가 될 수 있는지를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와 지계를 실천함으로써 수마나처럼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선업을 지어서 미래 부처님의 거룩한 승가에서 수마나 장로와 같은 특권을 가진 비구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부처님께 자신의 도시로 오셔서 안거를 지내시도록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곳을 방문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시고 “수마나여, 여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초청을 넌지시 수락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부처님이 오실 길을 따라서 부처님과 승가가 밤에 편히 쉴 수 있도록 100개 이상의 승원을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자는 동산을 하나 사서 부처님과 많은 비구들을 위한 숙소와 웅장한 승원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자 부왕에게 보고한 다음에 부처님께 자신의 도시로 오시도록 초청했습니다. 왕자와 백성들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꽃과 향으로 환영하면서 승원으로 모셨습니다. 거기서 왕자는 승원과 동산을 부처님께 정식으로 보시했습니다.
이러한 보시의식을 마친 왕자는 비빈들과 대신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연민으로 여기에 오셨소. 부처님께서는 물질적인 이익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법을 닦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수행으로 부처님을 공경하면 부처님은 기뻐하실 것이오. 나는 10계를 지키면서 부처님 계신 곳에 머물 것이오. 여러분은 오늘 내가 한 것처럼 우안거동안 모든 아라한에게 공양을 올리고 돌봐드리기 바라오."
그리하여 왕자는 10계를 지키며 부처님이 계신 곳에 머물면서 뛰어난 시자인 수마나 장로 곁에 머물면서 극진히 부처님을 시중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거가 끝나기 바로 직전 집으로 돌아와 부처님과 승가에 푸짐한 보시를 올리고는 부처님 앞에서 미래 부처님의 시자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자를 축복해주었으며, 왕자는 이후 수없는 생에 걸쳐 바라밀을 닦았습니다.

PA¿ICCASAMUPPÆDA 33
33. THE BUDDHA’S EMPHASIS ON PRACTICE
Incidentally there is a story illustrative of the importance the Buddha attached to the practice of the Dhamma. One day the Buddha came out of the Jetavana monastery with the bhikkhus to go on tour. King Kosala, the merchant Anæthapi¼ðika and other lay disciples requested the Buddha not to go on tour but it was in vain. The merchant was unhappy because he would not be able to hear the Buddha’s teaching or to make offerings to the Lord and the bhikkhus. His slave-girl, Pu¼¼æ by name, said that she would ask the Buddha to come back. The merchant promised to free her from bondage if she could make the Buddha return to the monastery.
Then Pu¼¼æ followed the Buddha quickly and implored the Lord to come back. The Buddha asked her what she could do for him. She replied that she had nothing to offer but that she would take refuge in the Buddha, the Dhamma and the Sangha and observe the five precepts if the Lord spent the lent in Sævatthi city. Saying, “Sædhu-well said”, the Buddha blessed her and returned to Jetavana monastery.
The news spread and the merchant set Pu¼¼æ free and adopted her as his daughter. She was now free to do what she liked, free to shape her own destiny. For this reason and by virtue of her pæramø (kammic potential) in her previous lives she joined the holy order. She practised vipassanæ and when she developed insight into the impermanence of næmarþpa, the Buddha exhorted her thus: “My daughter, just as the moon is full and complete on the fifteenth day, so also you should practice vipassanæ to the end. When your vipassanæ insight is complete, you will attain the end of suffering.”
After hearing this exhortation, Pu¼¼æ their attained the last stage on the holy path and became an Arahat. The Buddha had, of course, foreseen Pu¼¼æ’s destiny and it was his concern for her spiritual welfare that prompted him to cancel the projected tour and turn back in response to her appeal. This is an example of the high regard for the practice of dhamma that Gotama Buddha had in common with other Buddhas.
So the prince observed the ten precepts and dwelt at the residence of the Buddha, he spent his time near Sumana thera, the special attendant and watched him serve the needs of the Buddha in a very intimate manner. Shortly before the end of the lent he returned home, donated lavishly to the Sa³gha and in his prayer to the Buddha he affirmed his desire to become an intimate attendant of a future Buddha. The Buddha blessed him and the prince developed pæramøs for innumerable lifetimes. The jætakas refer to many lives which he devoted to perfecting himself in collaboration with bodhisatta Gotama. Sometimes the bodhisatta was king and he was the king’s minister or the bodhisatta was a human being and he happened to be a deva or Sakka. But their positions were often reversed. In some jætakas they were brothers.

Thus they developed pæramøs close together through their long samsæric journey and in his last existence Ænandæ was the nephew of King Suddhodana. After spending the first lent near Benarese the Buddha went to Ræjagaha and from there he proceeded to Kapilavatthu at the invitation of his father. When he left his native place, Ænandæ and some Sakyan princes followed the Buddha and joined the holy order.
The pæramø (perfections) which Ænandæ had acquired through many lifetimes made it possible for him to understand easily Pa¥iccasamuppæda that has baffled so many people. Moreover, Ænandæ had received instructions from teachers. He had not only lived with his teachers but also learned and inquired about the meanings of the doctrine and memorized them. This kind of learning helped him to understand Paticcasamuppæda. In fact he attained the first stage of the holy path after having heard the sermon of the noted preacher, Punna thera. Ænandæ paid a high tribute to Pu¼¼a for his illuminating discourse. The substance of the discourse is as follows.
“Self-conceit arises from attachment to the body, feeling, memory, kamma-formations (sa³khæra) and cons ciousness. It cannot arise without the five khandhæs any more than the reflection of a man’s face can appear in the absence of a mirror. The body, feeling etc., are not permanent. Since they are not permanent, you should contemplate and realize that none of the five khandhæs, whether in the past, present or future, internal or external, gross or subutle, good or bad, distant or near, is yours, is you or is your ego.”
“The well-informed disciple of the Buddha who thus contemplates and realizes truth is disillusioned with the five khandhæs. He becomes detached and free. He knows that his mind is free, that he has done what is to be done, that he has nothing else to do for his freedom.”
This was what Pu¼¼a preached to Ænandæ. As a sotæpannæ, Ænandæ realized the cause-andeffect relationships of Paticasamuppæda. He had this insight when he practised vipassanæ. He knew that illusion, attachment, obsession, effort, rebirth, consciousness, etc., form the links in the chain of causation. Here illusion or ignorance is avijjæ, attachment is ta¼hæ, obsession is upædæna, effort is kamma. So when it is said that kamma leads to rebirth, we should understand that rebirth is also conditioned by upædæna, etc. So the past involves avijjæ, ta¼hæ, upædæna and kamma as causes. The yogø who realizes this through contemplation of næmarþpa is free from all doubt which we cannot remove merely through learning and reflection.
As the best- informed disciple of the Buddha, Ænandæ also gained recognition of the Teacher in matters of knowledge. He usually accompanied the Buddha on preaching tour and memorized all the discourses. He could repeat a discourse verbatim after he had once heard it. As for the Buddha’s talks given in his absence he learnt from others and memorized them. The dhammas which he had thus learnt by heart are said to number eighty four thousands.
Ænandæ was well known for his retentive memory and the commentary on Mahævedalla sutta says that he could memorize hundreds of gæthæs in a short space of time. What, with his wide knowledge of the teachings of the Buddha and his chief disciples, it is no wonder that the doctrine of Pa¥icasamuppæda did not present much difficulty to him. Even today given a thorough knowledge of the Pi¥aka, a man may understand the cause-and-effect relationship in the doctrine.

33. 수행을 강조하시는 부처님
부처님께서 수행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중부』주석서(MA.i.347f)에 따르면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여행을 떠나시려고 비구들과 함께 기원정사(祇園精舍)121를 출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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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번역한 제따와나(Jetavana)는 중인도 꼬살라(Kosala)국의 수도 사왓티(Sāvatthi)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제따태자 소유의 동산에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 장자가 지어 승가에 헌납한 정사이다. 세존께서는 말년 22년간을 여기서 보내셨다. 세존이 아난다(Ānanda) 존자를 시자로 삼으신 것도 여기에 계시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불교 교단사로 본다면 세존께서 45년간 설법하신 기간의 절반 정도를 특히 말년을 이곳 한 군데서 머무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경들이 이 기원정사에서 설해진 것으로 나타나며 특히 『중부』와 『상응부』경들은 반 정도가 이곳에서 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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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살라 왕과 아나따삔디까 장자와 다른 재가신자들이 여행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청을 드렸습니다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나타삔디까 장자122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지 못하고 세존과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지도 못하게 되므로 즐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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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아나따삔디까(Anāthapiṇḍika)는 사왓티(Sāvatti)의 장자로 부처님의 대표적인 남자신도였다. 원래 이름은 수닷따(Sudatta)인데 의지할 곳 없는 고독한 이들(anātha)에게 먹을 것(piṇḍa)을 제공했으므로 아나따삔디까(Anāthapiṇḍika)라 불렸고, 한역으로는 급고독(給孤獨) 장자라고 알려졌다.
하루는 사업차 라자가하(Rājagaha)를 방문하였을 때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감격하여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부처님을 찾아뵈러 길을 나섰다. 하지만 길이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에 잠시 두려움이 생겼지만 시와까(Sīvaka)라는 야차가 용기를 북돋아 주어 계속 길을 가게 된다. 한림(寒林 sītavana)에서 경행을 하고 계신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듣고 즉시 예류과를 얻었다. 라자가하에서 돌아온 그는 제따왕자의 소유인 사왓티(Sāvatthi)의 제따숲(Jetavana)을 바닥에 황금을 깔아서 사들이고 그곳에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따와나(Jetavana)를 지어 승가에 헌납하였다. 그리고 아나따삔디까의 신심에 감복한 제따왕자는 그 돈으로 대문을 만들었다.
장자는 매일 자신의 집에서 백여 명의 비구를 초청하여 식사공양을 올렸으며, 언제 누가 오더라도 바로 접대할 수 있도록 오백명분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AA.i.208-9) 부처님께 귀의한 뒤로 그는 자신의 사업을 돌보지 않고 보시에만 마음을 쓰느라 그 많던 재산이 점차 줄어 나중에는 가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좁쌀이나 신죽이라도 있는 대로 승가에 보시했다. 그때 집의 문에 깃들어 살던 여신이 이를 보고 아나따삔디까에게 이제 그만 보시하고 사업에 힘을 쓰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아나따삔디까는 이러한 충고를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신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예류과를 얻은 성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장자의 집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게 된 여신은 제석(Sakka)에게 그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물었고, 제석의 말에 따라 다시 그의 재산을 이전과 같이 불려주었다.(DhA.iii.10ff; J.i.227 ff)
아나따삔디까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사리뿟따 존자를 집으로 청하였고, 존자는 아난다(Ānanda)와 함께 그를 찾아가서 여섯 감각장소[六處]로부터 시작하여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마음속에 집착을 품지 말라고 충고한다.(M.iii.258) 아나타삔디까는 그 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아나타삔디까는 곧 숨을 거두고 도솔천의 천신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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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뿐나(Puṇṇā)라는 장자의 여자 노예가 부처님께서 돌아오시도록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장자는 그녀가 부처님을 승원으로 되돌아오시도록 한다면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뿐나는 금방 부처님께 달려가서 돌아오시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래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냐고 물으셨습니다. 뿐나는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세존께서 안거를 사왓티(Sāvatthi)123서 보내신다면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고 5계를 지키겠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두124!”라는 말씀으로 축복해주시고 기원정사로 돌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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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사왓티(Sāvatthi)는 꼬살라(Kosala)국의 수도였다. 중국에서는 음역하여 사위성(舍衛城)이라고 하였다. 꼬살라는 부처님 재세 시에 인도에 있었던 16개국가운데 하나였으며 16국은 점점 서로 병합되어 나중에는 마가다(Magadha) 및 꼬살라 두 나라로 통일되었다. 부처님 재세 시에는 빠세나디(Pasenadi)왕이 꼬살라를 통치하였고, 아들 위두다바(Viḍūḍabha)가 계승하였다. 부처님께서 말년에 24년 정도를 이곳 사왓티의 기원정사(Jetavana)에서 머무시는 등 부처님과 아주 인연이 많았던 곳이다.
124. 사두(Sādhu)는 “장하구나. 착하도다. 선재(善哉)”등의 뜻으로 상좌부 불교국에서는 어떤 공덕 행을 하고 나서, 또는 법문이 끝나고 나서 이 말을 3번씩 합송 하여 상대방의 선업과 공덕행을 찬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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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식이 널리 퍼지자, 장자는 뿐나를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고 양녀로 삼았습니다. 뿐나는 이제 바라는 바를 마음대로 행하고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전생의 바라밀에 힘입어 뿐나는 거룩한 승가에 들어갔습니다. 뿐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여 통찰지를 계발하여서 정신-물질의 무상함을 보게 되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경책하셨습니다. “내 딸아, 15일이 되면 달이 둥근 보름달이 되듯이 끝까지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한다. 위빠나사의 지혜가 완전히 성숙하면 괴로움의 소멸을 이룰 것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경책을 들은 뿐나 장로니는 성스러운 도의 마지막 단계를 얻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물론 뿐나의 앞날을 내다보셨으며 뿐나의 간청에 따라 예정된 여행을 취소하고 돌아오신 것은 뿐나의 정신적인 행복에 대한 부처님의 배려였습니다. 이는 고따마 부처님이 법의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예로서, 이것은 다른 부처님들과 같습니다.
「본생경」에는 아난다가 고따마 부처님의 전신인 보살과 함께 많은 생에 걸쳐 바라밀을 쌓는 내용이 나옵니다. 때로는 보살이 왕이고 아난다는 대신이었으며, 때로는 보살은 인간이고 아난다가 천신이나 제석125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지위는 가끔 뒤바뀌기도 하고 어떤 생에서는 형제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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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제석(帝釋)의 원어는 삭까(Sakka)로 중국에서 석제(釋提)로도 한역되었다. 제석은 베다에 등장하는 인도의 유력한 신 인드라(Indra)이며, 삼심삼천(Tāvatiṃsa)을 다스리는 신들의 왕이다. 그래서 삼십삼천을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한다.『상응부』(S.i.229)와 「법구경」주석서(DhpA.i.264)에서는 제석의 여러 가지 이름을 열거하는데 그 가운데서 셋째에 그가 인간으로 있을 때 철저하게 보시를 베풀었다(sakkaccam dānam adāsi)고 해서 삭까(Sakka)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제석은 웨자얀따(Vejayanta) 궁전에 거주하며 그 수도의 이름은 수닷사나(Sudassana)이다. 부처님은 『상응부』(S.i.228, 229, 231)에서 제석이 마가(Magha)라는 인간으로 있을 때 실천한 7가지 선행으로 천신들의 왕으로 태어났음을 설하고 계신다.
제석의 삼보에 대한 신앙은 아주 유명하다. 싯닷타 태자가 출가하여 아노마(Anomā) 강가에서 머리를 잘라 공중에 던지자 제석이 그것을 받아서 삼십삼천의 쭐라마니 탑묘(Cūḷamani cetiya)에 안치하였다.(J.i.65). 부처님의 정각을 방해하려고 마라(Māra)가 왔을 때 그는 보리수 근처에서 천상의 나팔을 불면서 서있었다.(J.i.72). 부처님이 빔비사라(Bimbisāra)왕의 식사초대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때 젊은이의 모습으로 변해서 부처님과 비구들 앞에 가면서 부처님을 찬미하였다.(Vin.i.38). 부처님께서 쌍신변(雙神變)을 나투실 때 제석은 천막을 지어 드렸고, 바람과 해의 신에게 명하여 외도들의 천막을 없애게 하여 그들에게 큰 불안감을 주었다.(DhA.iii.206, 208). 부처님이 삼십삼천에서 상까사(Saṅkasa)로 내려오실 때 금, 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세 개의 사다리를 만들어 드렸다.(DhA.iii.225)
제석은 또한 부처님이 유행병을 없애고자 웨살리(Vesāli)를 방문하였을 때 같이 동참하여 그의 위력으로 악령들이 사라지도록 했다. (DhA.iii.441). 한때 기원정사(Jetavana)의 연못이 말랐는데 부처님이 목욕을 하려 하시자 즉시 비를 내리게 해서 연못에 물이 차도록 했다.(J.i.330). 그리고 부처님의 병이 위중해졌을 때 몸소 병간호를 해드렸다.(DhA.iv.269f) 또 사리뿟따의 임종 시에도 그렇게 병간호를 하였다. 제석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영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도왔다. 또한 제석은 나병환자 숩빠붓다(Suppabuddha)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삼보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지 시험하기를 좋아했다.(DhA.ii.34f) 그리고 제석은 세상에서 도덕률이 무너지지 않게 호지하는 역할을 한다. 즉 보통 사람들이나 왕이 계행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에게 나타나서 겁을 주어 선을 행하도록 하고, 선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석은 비록 높은 덕성과 위력을 지닌 신들의 왕이지만 경전과 주석서에 따르면 지성적으로는 완벽하지는 않은 듯하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고 종종 불안에 떨기도 했다. 어느 때 제석은 자신에게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징조를 발견하고는 크게 두려워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와서 법문을 듣고 예류과를 얻고는 죽어서 젊고 새로운 제석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들은 화생(化生)을 하기 때문에 이 사실은 오직 부처님과 제석만이 알고 있었다.(DA.iii.732) 그리고 나서 제석은 다시 불환과를 얻었기 때문에 위로 흐르는 자(uddhaṁ-sota)가 되어 정거천(淨居天)의 무번천(無煩天)에서 천 겁을, 무열천(無熱天)에서 2천 겁을, 선현천(善現天)에서 4천 겁을, 선견천(善見天)에서 8천 겁을,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1만 6천 겁, 이렇게 하여 모두 3만 천 겁동안 범천의 수명을 누릴 것이라고 한다.(DA.iii.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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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그렇게 기나긴 윤회의 여정을 함께 거치며 바라밀을 닦았고 마지막 생에서 아난다는 숫도다나 왕126 조카가 되었습니다. 첫째 안거를 베나레스(Benares) 근처에서 보낸 다음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Rājagaha)로 갔고, 거기서 부왕의 초청을 받아 까삘라왓투(Kapilavatthu)로 향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고향을 떠날 때 아난다와 몇 명의 석가족 왕자들은 부처님을 따라 승가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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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숫도다나 왕은 까삘라왓투(Kapilavatthu)의 석가족 왕국을 다스리던 왕이었다. 부인은 마야(Mahā-māyā) 정비였다. 마야 부인이 싯닷타 태자를 낳고서 7일 만에 죽어 도솔천에 태어나자 왕은 빠자빠띠(Pajāpatī)를 정비로 삼았다.(Mhv.ii.15f.; Dpv.iii.45; J.i.15, etc.) 점성가들이 태자는 출가하여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자 출가하지 못하게 하려고 세 개의 궁전을 지어 태자를 세속적 쾌락 속에 지내게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자가 유성출가하여 극심한 고행을 닦는다. 천신들이 와서 태자가 죽었다고 이야기 하였지만 왕은 자기 아들은 목표를 이루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며 믿지 않았다.(J.i.67). 태자가 깨달음을 성취하였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왕은 라자가하(Rājagaha)의 죽림정사(Veḷuvana)로 전령을 보내어 까삘라왓투를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전령들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는 출가하는 바람에 자신들의 본래 임무를 망각하고 말았다. 9번씩이나 이렇게 전령들이 돌아오지 않자 숫도다나는 깔루다이(kāḷudāyī)를 보내어 다시 한번 부처님을 초청하였고, 부처님도 이에 응해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신다. 숫도다나 왕은 태자였던 부처님께서 까빌라왓뚜를 탁발다니시는 것을 보고는 부끄럽게 생각하자 탁발은 모든 부처님들의 관행이라고 말씀하셨고 이것을 들은 숫도다나 왕은 예류과를 얻었다. 왕은 부처님을 왕궁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베풀었고, 이 자리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일래과를 얻었다.(J.i.90; cf. DhA.iii.164f).그리고「마하담마빨라 본생경(Mahādhammapāla Játaka)」(J.447)을 듣고 불환과를 얻었다. 왕이 임종할 때 부처님은 다시 오셔서 왕에게 법문을 설하셨고, 왕은 재가 아라한이 되어 입멸하였다.(ThigA.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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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생에 걸쳐 쌓아온 바라밀로 인해 아난다는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연기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난다는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난다는 스승들과 같이 살았을 뿐 아니라 교리에 대해서 배우고, 질문하고, 기억했습니다.
이런 식의 공부로 아난다는 연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난다는 저명한 설법가인 뿐나(Puṇṇā) 장로의 설법을 들은 다음에 예류과를 성취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뿐나 장로의 감로(甘露) 같은 법문에 깊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 법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만(māna)은 몸, 느낌, 기억, 업형성력(saṅkhāra), 식에 대한 집착에서 생깁니다. 거울이 없이는 거울에 비친 사람의 얼굴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오온(五蘊)127 없이 자만은 생기지 않습니다. 몸, 느낌 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영원하지 않으므로 오온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것이거나 내적이거나 외적이거나 거칠거나 미세하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간에 ‘나의 것’이거나 ‘나’라거나 ‘자아’가 아니라고 관찰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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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불교는 개인과 중생을 예외 없이 오온(五蘊)으로 해체하고 분석한다. 빨리어 깐다(kkhanda)는 무더기, 더미, 적집(積集)이란 뜻으로 정신-물질(名色 nāma-rūpa)을 이루는 다섯 가지 무더기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말이다. 또 오취온(五取蘊)이라는 말은 중생들은 이러한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무더기일 뿐인 자아를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upādāna)하기 때문에, 집착하는 무더기(upādāna-kkhanda)라는 의미에서 오취온이라고 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온과 오취온은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중생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의어이다. 하지만 성자의 경우는 오온(五蘊)에 대한 집착이 멸하여 오온이 단순한 객관적 현상으로만 존재한다.
① 색온(色蘊 rūpa-kkhandha) - 물질의 무더기
물질로 된 몸뚱아리를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수화풍의 사대(四大), 안• 이• 비• 설• 신 / 색• 성• 향• 미• 촉의 오내외입처(五內外入處)와 같은 물질일반을 나타내며, 아비담마에서는 이를 더 세분화하여 28가지 물질들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영역은 material body.
② 수온(受蘊 vedanā-kkhandha) - 느낌의 무더기
감각의 육문을 통해 경험되는 괴로운 느낌[苦受], 즐거운 느낌[樂受],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을 의미한다. 이 느낌[受]은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단초가 되는 심리현상이라 하겠다. 아비담마에서 마음부수[心所]와 일치하며 52가지 심소법(心所法)들로 설명하고 있다. 느낌[受]의 영역은 feeling.
③ 상온(想蘊 saññā-kkhandha) - 인식의 무더기
인식[想]은 개념적인 지각이나 파악을 뜻한다. 즉, 지적인 단초가 되는 심리현상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여기에 꽃이 있다면 그것을 그냥 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인식에는 외적인 대상의 지향에 따라 이름 지어진 형상[色]에 대한 인식, 소리[聲]에 대한 인식, 냄새[香]에 대한 인식, 맛[味]에 대한 인식, 감촉[觸]에 대한 인식, 마음대상[法]에 대한 인식의 여섯 가지가 있다. 느낌[受]과 마찬가지로 감각의 육문을 통해 일어난다. 아비담마에서 마음부수[心所]와 일치하며 52가지 심소법(心所法)들로 설명하고 있다. 인식[想]의 영역은 perception.
④ 행온(行蘊 saṅkhārā-kkhandha) - 상카라의 무더기
여기서의 상카라[行]는 심리현상을 의미한다. 오온에서의 상카라[行]는 상좌부 아비담마의 52가지 심소법들 가운데서 느낌[受]과 인식[想]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부수법[心所法]들 모두를 뜻하는데 감각접촉(phassa), 의도(cetanā), 주의기울임(manasikāra), 집중(心一境 ekaggatā), 의욕, 선한 심리현상들, 불선한 심리현상들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오온에서 느낌[受]• 인식[想]• 식[識]은 항상 단수로 나타나지만 상카라[行]는 항상 복수로 나타난다.(12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만 보아도 상카라[行]가 우리의 정신 영역 가운데서 수[受]• 상[想]• 식[識]을 제외한 모든 정신적 행위, 즉 심리현상을 포괄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상카라[行] 역시 아비담마에서 마음부수[心所]와 일치하며 52가지 심소법(心所法)들로 설명하고 있다. 영역은 mental formations.
⑤ 식온(識蘊 viññāṇa-kkhandha) - 식의 무더기
식(識)이란 감각의 육문을 통해 이에 대응하는 외부의 감각대상들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식은 느낌[受]• 인식[想]• 상카라[行]와 같은 마음부수[心所]들의 도움으로 대상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식(識)은 매순간 일어나고 멸한다. 식(識)은 아비담마에서 마음(心 citta)과 일치하고 그래서 심법(心法)으로 정리되고 있다. 영역은 consciousness.
이 가운데 식온(識蘊)은 아비담마의 마음[心]과 일치하고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은 마음부수[心所]와 일치하며, 색온(色蘊)은 물질과 일치한다. 한 개체 안에서 이들 오온은 함께 일어나고 함께 멸한다. 물론 아비담마에 따르면 물질인 색온(色蘊)과 정신인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생멸속도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즉 정신은 물질보다 16배 혹은 17배 빠르다고 한다.
아라한의 경우는 오온(五蘊)에 대한 집착이 멸하여 오온이 단순한 객관적 현상으로 존재할 뿐이고 범부중생의 경우는 오온을 집착하는 무더기들을 뜻하는 오취온(五取蘊 pañca-upādāna-kkhanda)이라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오온과 같은 개념으로써 명색(名色 nāma-rūpa)이라는 단어가 경에서는 주로 12연기의 하나의 구성요소로 많이 나타난다. 나라는 존재를 더미나 무더기나 적집의 측면을 강조해서 사용한 언어가 오온(五蘊)이고 나라는 존재를 정신-물질의 조합이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 명색(名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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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관찰하고 진리를 깨달은 잘 배운 부처님의 제자는 오온에 대한 환상을 깹니다. 그리고 집착을 버리고 해탈을 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해탈했음을 알고 해야 할 일을 다 했음을 알며, 해탈을 위해서 달리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뿐나가 아난다에게 설한 것입니다. 예류자로서 아난다는 연기법의 원인과 결과를 깨달았습니다. 아난다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여 이러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뿐나는 무명, 갈애, 집착, 업, 재생, 식 등이 인과관계라는 사슬의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전도된 인식 또는 무명이 아위자(avijiā), 갈애는 딴하(taṇhā), 집착은 우빠다나(upādāna), 노력은 깜마(kamma)입니다. 그래서 업이 재생에 이른다고 했을 때 우리는 재생이 또한 집착 등에 의해 조건 지어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무명, 갈애, 집착, 업이 원인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을 관찰하여 이를 깨달은 수행자는 단지 배우고 사유하기만 해서는 결코 제거할 수 없는 모든 의심들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 다문(多聞)제일인 아난다 존자는 지식에 있어서도 스승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난다는 대개 부처님의 전법여행에 동행했고 모든 법문을 기억했습니다. 또 일단 한번 들은 법문은 그대로 되풀이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난다가 없을 때 부처님이 하신 법문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서 기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난다가 배운 법은 8만 4천개에 이른다고 합니다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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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장로게(長老偈)」(Thag.92)에는 아난다 존자의 다음과 같은 게송이 나온다.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하노라.“(Thag.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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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 존자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했는데 『중부』「유명대경(有明大經 Mahāvedalla sutta)」(M.i.292) 주석서에 따르면 아난다는 짧은 시간에 수백 개의 게송을 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불법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가진 부처님의 주요한 제자였던 아난다에게 연기법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삼장에 정통한 사람은 연기법의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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