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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글 제목: (Mahāsi Sayādaw)93~98
전체글올린 게시글: 2015-12-30, (수) 4:21 am 

가입일: 2015-01-30, (금) 10:13 pm
전체글: 103
PA¿ICCASAMUPPÆDA 93
93. RELEVANCY OF CAUSE TO EFFECT
The last aspect of Pa¥iccasamuppæda is the one-to-one correspondence between cause and effect (evamdhammatæ). Every cause leads only to the relevant effect; it has nothing to do with the irrelevant effect; In other words, every cause is the sufficient and necessary condition for the corresponding effect. This fact leaves no room for belief in chance or moral impotency, (akiriyadi¥¥hi). But as Visuddhimagga says, for those who misunderstand it, it provides the basis for rigid determinism. (Niyatavæda) As for the contemplating yogø, he clearly sees the relevancy of each effect to its cause and so he has no doubt about their one-to-one correspondence and the reality of moral freedom.
I have dwelt at length on noteworthy facts about Pa¥iccasamuppæda. These will be clear to the yogøs who consider them on the basis of their experience. But as the doctrine is profound, they will not be able to grasp some facts that are beyond their intellectual level. It is of course only the omniscient Buddha who knew everything thoroughly. The yogø should make it a point to know fully as far as possible within the scope of his intellect. To this end he should learn from the discourses of bhikkhus, reflect over what he has learnt and enrich his understanding through the practice of mindfulness.
Of the three methods of study, the third method (bhævanæmaya) is the most important. For the yogø who gains insight-knowledge by this method attains the holy path and is liberated from the dangers of the lower worlds.

93. 결과에 대한 원인의 관련성
연기의 마지막 측면은 원인과 결과의 일대일 대응(evaṁ dhammatā)입니다. 모든 원인은 적절한 결과에 대해서만 작용하며, 부적절한 결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원인은 상응하는 결과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이러한 사실에는 업보를 부정하는 견해(akiriya-diṭṭhi)216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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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업보를 부정하는 견해(akiriya-diṭṭhi)는 행위는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견해로써 선업이 가지는 특질을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도덕부정론(akiriya-vāda)이며 경전에서 언급하는 세 가지 삿된 견해(micchā-diṭṭhi)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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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정도론이 말하고 있듯이, 잘못 이해한 사람들에겐 이는 운명론(niyata-vāda)의 토대가 됩니다. 관찰하는 수행자들은 각각의 원인에 대한 그 결과의 관련성을 분명히 보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일대일 대응과 도덕적 책임의 실재에 대해 아무 의심이 없습니다.
나는 연기의 주목할 만한 사실을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연기의 여러 측면들을 숙고하는 수행자는 이러한 사실이 명확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연기법은 심오하기 때문에 수행자의 지적수준을 넘어선 몇몇 사실은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완전히 아는 사람은 일체지자(一切智者)이신 부처님뿐입니다. 수행자는 자기 지성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이 알아야만 합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들은 것을 숙고하고, 사념처 수행을 통해서 자신이 이해한 바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공부방법217 가운데 수행을 해서 생기는 지혜(修慧 bhāvanā-maya-ñāṇa)가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으로 통찰지를 얻는 수행자는 성스러운 도를 얻어 악처에 떨어질 위험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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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세 가지 공부방법이란 팔정도의 세 번째 도인 통찰지(慧 paññā)를 얻기 위한 세 가지 단계를 말한다.
(1) 들어서 생기는 지혜(聞慧 suta-maya-ñāṇa): 책을 읽거나 법문을 들어서 생기는 지혜로 문소성지(聞所成智)라고도 한다.
(2) 사유해서 생기는 지혜(思慧 cintā-maya-ñāṇa): 책을 읽거나 법문을 들은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여 생기는 지혜로 사소성지(思所成智)라고도 한다.
(3) 수행해서 생기는 지혜(修慧 bhāvanā-maya-ñāṇa): 읽고 듣고 생각한 것을 실참 수행을 닦아서 생기는 지혜로 수소성지(修所成智)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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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CCASAMUPPÆDA 94
94. CONCLUSION
Now we will conclude the discourse on Paticcasamuppæda with a commentary on Arahan, the chief attribute of the Buddha.
The formula about the dependent origination consists of twelve links beginning with ignorance and ending in death. It has ignorance and craving as two root-causes and two life cycles.
The anterior cycle begins with ignorance and ends in feeling, while the posterior cycle begins with craving and ends in death and old age. Since anxiety, grief and the like do not occur in the Brahmæ world, they do not necessarily stem from birth (jæti) and as such are not counted among the links of the dependent origination.
Furthermore, the anterior life cycle explicitly shows only avijjæ and sa³khæra; but avijjæ implies ta¼hæ-upædæna and sa³khæra implies kammabhava. So all these five links form the past causes, while viññæ¼a, næmarþpa, æyatana, phassa and vedanæ form the present effects. These viññæ¼a, etc., are the wholesome or unwholesome kammic fruits that are clearly experienced at the moment of seeing, etc. The posterior life cycle directly concerns ta¼hæ, upædæna and kæmmabhava but these three causes imply avijjæ, ta¼hæ, upædæna, sa³khæra and kammabhava represent the five present causes that lead to birth, old age and death in future. These effects are the same as those of viññæ¼a, næmarþpa, etc. Thus like the present effects, the future effects are also five in number.
So there are altogether four groups of layers of five past causes, five present causes and five effects in the future. The layers represent three causal relations viz., the relation between the past causes and the present effects, the relation between the present effects and present causes and the conditionality of phenomenal existence is evident in these layers or the twenty links of cause and effect which are termed akæra. These links may be grouped in terms of vatta of cycles or rounds of defilements. viz., the cycle of defilements, the cycle of kamma and the cycle of kammic fruits which we have already explained before.
Those who have done good kammas pass through human, deva or Brahma worlds while those who have done evil are doomed to rebir th in the lower worlds. Living beings confined to life-cycle (samsæra) get the chance to do good only when they have a good teacher. A good teacher is hard to come by and so many people are largely prone to evil deeds and subject to their kammic effects in terms of suffering. It is then said that they are overtaken by Nemesis, that they have to pay for their round of kamma. Once established on the Ariyan path they cannot land in hell but as for the cycle of kammic fruits even the Buddhas and Arahats are not spared kammic retribution.

94. 결론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주요한 특성인 아라한에 대한 설명으로 12연기 법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연기의 공식은 무명(無明)에서 시작해서 늙음• 죽음[老死]으로 끝나는 12가지 각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 회전은 무명(無明)에서 시작해서 느낌[受]으로 끝나고, 후반부 회전은 갈애[愛]에서 시작해서 늙음• 죽음[老死]으로 끝이 납니다. 범천계에서는 걱정과 슬픔 따위가 생기지 않으므로, 그것들은 태어남[生]에서 반드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기의 각지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반부 회전은 분명하게 무명(無明)과 상카라[行]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무명은 갈애[愛]와 집착[取]을 암시하고 상카라는 업으로서의 존재[業有]를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 각지(무명, 상카라, 갈애, 집착, 업)들은 모두 과거 원인을 구성하고, 식과 정신-물질[名色], 여섯 감각장소[六入]와 감각접촉[觸]과 느낌[受]은 현재의 결과을 구성합니다. 이러한 각지들은 봄, 들음 등의 순간 분명하게 경험되는 선업과 불선업의 과보입니다.
후반부 회전은 직접적으로 갈애[愛]와 집착[取]과 업으로서의 존재[業有]와 관련되지만, 이 세 가지 원인은 무명(無明)과 상카라[行]를 암시합니다. 그렇듯이 과거의 무명(無明), 갈애[取], 집착[取], 상카라[行], 업으로서의 존재[業有]는 미래에 태어남[生], 늙음 • 죽음[老死]에 이르는 현재의 다섯 가지 원인을 나타냅니다.
이 결과는 식(識), 정신-물질[名色]등의 결과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결과처럼 미래의 결과도 모두 다섯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과거의 다섯 가지 원인, 현재의 5가지 원인, 미래의 다섯 가지 결과로 구성된 네 가지 층이 있습니다. 층들은 3가지 인과관계를 나타냅니다. 즉, (1) 과거의 원인과 현재의 결과의 관계, (2) 현재의 결과와 현재의 원인의 관계, (3) 이러한 층들에서 부각되는 현상적 존재의 조건, 또는 성질(ākāra)이라고 하는 원인과 결과의 스무 가지 요소가 그것입니다. 이 각지들은 우리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번뇌• 업• 과보의 회전이라는 회전(vaṭṭa)라는 용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선업을 지은 사람은 인간계, 천신계, 범천계로 갈 것이고, 악업을 지은 사람은 악처에 태어납니다. 윤회에 얽매어 있는 중생들은 좋은 스승을 만날 때만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악행을 하고 자신의 업보를 괴로움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인과응보에 압도되고, 업의 회전 속에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일단 성스러운 도에 들어서면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지만, 과보의 회전에 있어서는 부처님이나 아라한도 업의 과보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PA¿ICCASAMUPPÆDA 95
95. CUTTING OFF THE CYCLE OF DEFILEMENTS
If we wish to end the threefold cycle, we will have to remove its cause viz., the cycle of defilements. Defilements originate with seeing, hearing, etc., and so we must practise mindfulness to prevent their arising when we see, hear, etc. The practice of concentration and mindfulness makes the yogø aware of the impermanence and insubstantiality of all phenomena. This means he has no more illusion and is free from the cycle of defilements, kammas and kammic fruits. Now to sum up the way to the total conquest of the threefold cycle of defilement, kammas and kammic results with reference to the attributes of the Buddha.

95. 번뇌의 회전을 끊어버림
세 가지 회전을 멈추고자 한다면, 그 원인인 번뇌의 회전을 먼저 없애야 합니다. 번뇌는 보고 들어서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사념처 수행을 해서 보고 들을 때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마타 수행과 사념처 수행은 모든 현상의 무상과 실체 없음을 알게 해줍니다. 이는 수행자가 더 이상 전도된 인식을 지니지 않고 번뇌• 업• 과보의 회전에서 벗어났음을 뜻합니다.
지금부터 부처님의 특성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번뇌• 업• 과보의 세 가지 회전을 완전히 정복하는 방법을 요약 해보겠습니다.


PA¿ICCASAMUPPÆDA 96
96. ARAHAN AND THE ATTRIBUTES OF THE BUDDHA.
The Buddha’s special designation is Arahan and this word points to the following attributes of the Buddha.
(1) The Buddha was free from defilements. So were the Arahats but they were not free from the habits that continued to dominate them even after the attainment of their spiritual goal. This is evident in the story of thera Pilindavaccha. Pilinda was an Arahat, beloved of the devas and extolled by the Buddha. Yet he was in the habit of addressing his fellow bhikkhus or laymen rather rudely.
Some bhikkhus complained to the Buddha about the thera’s rudeness. The Buddha attributed this unpleasant habit to his having spent several life-times in the Brahmin families but said that being an Arahat, the thera was pure and good at heart.
As for the Buddha, from the time of his attainment of supreme enlightenment, he became free from all the habits or hangovers of defilements that were carried over from past lives. This distinctive mark of the Buddha’s Arahatship should be borne in mind when we contemplate the Lord’s attributes. The complete extinction of cycles means total liberation from the three cycles of defilements, kamma and kammic fruits.
(2) The Buddha was called Arahan because of his conquest of defilements. People fear only the external enemy such as robbers, snakes, etc. They do not bother about the internal enemy, that is, defilements that are more terrible. In point of fact, they have to suffer because of their mind-body complex and defilements. The root-cause is the defilements that give rise to repeated rebirths and sufferings. The defilements are ten in number viz., craving, hatred, ignorance, pride, illusion, doubt, lassitude, restlessness, shamelessness and lack of conscience.
(3) By virtue of his outstanding moral integrity, wisdom and enlightenment, the Buddha was worthy of reverence and offering. People who revered or made offerings to the Buddha have their wishes fulfilled.
(4) Since he had conquered the defilements completely, the Buddha was pure at heart whether in public or solitude. Many people play the hypocrite, posing as good men or women in public but doing evil when there is no one to see or hear them. In reality, there is no place where one can do evil secretly. Even though the evil-doer is not seen by men and gods, he cannot help having qualms of conscience. His conscience is the most infallible witness to his misdeeds and it forms the basis for death-bed visions that point to unpleasant life that future has in store for him. As for the Buddha, having wholly conquered all the defilements, his mind was always pure and he had absolutely no desire or intention to do evil either publicly or secretly.
(5) The Buddha had destroyed the spokes of the wheel with the sword of the Arahatship. Here the wheel means the cycle of life as described in the doctrine of Pa¥iccasamuppæda and the sword means the insight-knowledge of the Arahat. The axle of the wheel represents avijjæ, the rootcause; the fringe of the wheel stands for old age and death, while the spokes stand for the middle links, viz, sa³khæra, etc. Just as the removal of spokes makes it impossible for the wheel to move, so also the destruction of the middle links in the chain of conditioned phenomena means the end of the cycle of life.

96. 아라한과 부처님의 특성
부처님의 특별한 칭호는 아라한이며, 이 아라한이란 말은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1) 부처님께서는 번뇌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아라한도 번뇌에서 벗어났지만 정신적인 목표를 달성한 뒤에도 계속해서 지배해온 습관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이것는 「법구경」주석서(DhA.iv.181f)에 나오는 삘린다왓차(Pilindavaccha)장로의 이야기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장로는 천신들이 사랑하고 부처님께서도 칭찬하던 아라한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로는 비구 도반이나 신도들을 다소 무례하게 부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몇몇 비구들이 장로의 무례함을 부처님에게 불평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유쾌하지 못한 버릇은 장로가 바라문 가문에서 여러 전생을 살아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아라한으로써 장로의 속마음은 청정하고 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위없는 깨달음[正等覺]을 증득한 뒤부터 전생에서부터 내려온 모든 버릇이나 번뇌의 잔영에서 자유롭게 되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특성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에는 부처님의 이러한 특성을 명심해야 합니다. 회전의 완전한 소멸이란 번뇌, 업, 과보의 세 가지 회전에서 자유로워짐을 뜻합니다.
(2) 부처님께서는 모든 번뇌를 정복하셨기 때문에 공양 받아 마땅한 분[應供]인 아라한(arahan)218이라고 불립니다. 사람들은 도둑, 뱀 따위의 외부의 적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훨씬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인 번뇌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물질의 복합체와 번뇌 때문에 괴로움을 겪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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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아라한(arahan)은 ‘대접과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란 뜻이고 중국에서 그 의미를 살려 응공(應供)이라고 번역했다. 아라한은 열 가지 족쇄를 완전히 제거하여 성스러운 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신 분이다.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아라한을 번뇌들로 이루어진 적(ari)을 부수어 버린(hata)자로 설명한다. 이 아라한은 또한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如來十號]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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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근본 원인은 되풀이 되는 재생과 괴로움을 일으키는 번뇌입니다. 번뇌는 갈애, 성냄, 무명, 자만, 사견, 의심, 해태, 들뜸, 수치심 없음, 양심 없음 등의 모두 열 가지입니다.
(3) 부처님의 완벽한 도덕적 청정, 지혜, 깨달음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부처님을 숭배하거나 공양을 올린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다 이루었습니다.
(4) 부처님께선 번뇌를 완전히 쳐부쉈기 때문에 홀로 계시거나 대중 앞에 계시거나 속마음은 늘 청정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주위에 사람이 있을 때는 착한 척 하지만 아무도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을 땐 악행을 하는 위선을 부립니다. 사실, 몰래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설사 악행을 범한 사람이 사람이나 천신에 의해 목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까지 들지 않을 순 없습니다. 양심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가장 의심할 여지없는 목격자이며 미래에 받게 될 괴로운 삶을 가리키는 임종의 표상의 토대가 됩니다.
부처님은 모든 번뇌를 완전히 쳐부쉈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깨끗하며 대중 앞에서나 홀로 계시거나 악행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5)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의 칼로 수레바퀴의 살을 없애셨습니다. 수레의 차축은 근본원인인 무명을 나타냅니다. 수레바퀴의 테두리는 늙음• 죽음[老死]을 나타내며 수레바퀴의 살은 상카라[行]등의 중간 연결고리를 나타냅니다.
바퀴살을 제거하면 바퀴가 굴러 갈수 없는 것처럼, 조건 지어진 현상의 사슬에서 중간 연결고리의 파괴는 윤회의 종식을 뜻합니다.


PA¿ICCASAMUPPÆDA 97
97. STORY OF BAKA BRAHMÆ
The first thing to do to end the life-cycle is to remove its root-cause viz., ignorance. For ignorance is invariably followed by sa³khæra, viññæ¼a etc., down to jaræmara¼a (old age and death). This is true in the sensual worlds as well as in the material world of Brahmæs. Once there was a great Brahmæ called Baka. He outlived many world-systems (kappa); indeed he lived so long that at last he forgot his previous existences and became convinced of his immortality without old age or death. The Buddha went to his abode to remove his illusion. The Brahmæ welcomed the Lord and bragged about his eternal life. The Buddha said that his ignorance was appalling in that he denied impermanence, old age and death. He revealed the good deeds that had led to the Brahmæ’s longevity and it was this fabulous longevity that had made him oblivious of his previous lives and created the illusion of his immortality. On hearing this, Baka Brahmæ had second thoughts about his omnipotence. Still, he was conceited and in order to show his power, he tried to vanish out of sight of the Buddha and other Brahmæs but it was in vain. Because of the power of the Lord, he remained visible.
Then the Buddha uttered the following verse: bhavevæham bhayam disvæ bhavan ja vibhavesinam bhavam næbhivadim kiñci nandincana upædiyim: I do not extol any existence because I see danger in it. I have renounced the craving for existence because I am aware of its evil.
Baka Brahmæ and other Brahmæs had lived so long that they considered their existence and their abode eternal. Likewise the evils of life escape the notice of those who have the blessings of a good life such as health, wealth, prestige, success and so forth. But life is subject to suffering on all its three planes: Sensual plane, material plane and immaterial plane. A Brahmæ or a rishi on the material or immaterial planes of existence may live for aeons but they too have to die eventually.

97. 바까 대범천 이야기
윤회를 끝내기위해 맨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근본 원인, 즉 무명(無明)을 없애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명에 뒤이어 반드시 상카라[行], 식(識)등이 수반되고 늙음과 죽음[名色]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욕계는 물론 색계범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옛날 바까(Baka)라는 대범천(大梵天)219이 있었습니다. 바까는 수많은 겁(劫)에 걸쳐 살았습니다. 실로 너무나 오래 살아서 결국에는 자신의 전생을 잊어버리고 늙음이나 죽음이 없는 자신의 불멸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의 전도된 인식을 없애주고자 바까 범천의 거처로 가셨습니다. 범천은 부처님의 방문을 환영하고는 자신의 영원한 삶을 자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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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대범천(大梵天)의 원어는 마하브라흐마(Mahā-brahmā)이다. 초선천(初禪天)의 세 번째 천상을 뜻하기도 하고 여기서처럼 유력한 범천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력한 범천으로 경에서는 뚜두(Tudu), 나라다(Nārada), 가띠까라(Ghaṭikāra), 바까(Baka), 사냥꾸마라(Sanaṅkumarā), 사함빠띠(Sahampatī) 등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서 사함빠띠 범천이 대범천으로 많이 등장한다. 부처님께 법륜을 굴려주시길 간청한 대범천이 바로 사함빠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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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범천의 무명은 무상, 늙음,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끔찍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범천이 오래 살게 한 선업을 밝히셨고 이러한 너무나도 오랜 수명으로 자기 전생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불멸한다는 전도된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바까 범천은 자신의 전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까 범천은 여전히 교만하였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부처님과 다른 범천들 눈앞에서 사라지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범천은 여전히 모습을 나타낸 채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Bhavevāham bhayam disvā bhavan ja vibhavesinam bhavam nābhivadim kiñci nandincana upādiyim
나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보노라, 존재하지 않음을 구하는 자들에서 존재를 보노라.
어떤 존재도 나는 환영하지 않고, 즐김을 움켜쥐지도 않는다.(M.i.330)
바까 범천과 다른 범천들은 너무나 오래 살아 자신의 존재와 세계가 영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건강, 부귀, 명예, 성공 따위의 축복받은 삶을 누리는 사람들은 삶의 괴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三界)의 모든 삶은 다 괴로움입니다. 색계나 무색계에 있는 선인(仙人), 즉 범천은 여러 겁을 살겠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PA¿ICCASAMUPPÆDA 98
98. SAMMÆSAMBUDDHA
It is insight knowledge that leads to the destruction of ignorance which is the root-cause of suffering. For the Buddha this means the attribute of sammæ-sambuddha. Sammæsambuddha is one who knows the four noble truths rightly, thoroughly and independently. Here the twelve links of Pa¥iccasamupæda may be differentiated in terms of the four noble truths. Thus old age and death together means the first truth of suffering and rebirth means the truth about the cause of suffering. The cessation of this cause and this effect means the truth about the cessation (nirodha) and knowledge of this cessation means the truth about the path to it (magga).
The same may be said of rebirth and kammic cause, kammic cause and clinging, clinging and craving, craving and feeling, feeling and contact, contact and six senses, the senses and næmarþpa, næmarþpa and consciousness, consciousness and sa³khæra, and sa³khæra and ignorance. In short, what immediately precedes a link is termed its cause (samudaya) and what immediately follows is called its effect. (dukkha saccæ). We can even make ignorance (avijjæ), the origin of life-cycle synonymous with truth about suffering (dukkha saccæ), if we regard it as an effect of the attachment (æsava) viz., attachments to sensual pleasure, existence, belief and ignorance.

Here the identification of ta¼hæ with dukkha may be not acceptable to some people. But it is reasonable if we remember the fact that all næma-rþpa including ta¼hæ means dukkha since it is subject to impermanence. The commentary does not describe avijjæ as dukkha. But we can say it is dukkha arising from æsava (biases). There are four æsavas that have their sources in sensual craving, attachment to life, false belief and ignorance. It is a matter of ignorance in the past again giving rise to ignorance in the present. Hence the æsavas may be regarded as the cause of avijjæ. So having realized the four noble truths and attained Nibbæna, through his own enlightenment, the Buddha earned the unique and glorious title of Sammæsambuddha. He knew that all the phenomena covered by the doctrine of Paticcasamuppæda are the real dukkha and the causes of dukkha. He was disenchanted, had no attachment and achieved liberation from all fetters. So according to Visuddhimagga, he was called Arahan because he managed to destroy completely all the supports of the wheel of life.

98. 정등각자
괴로움의 근본원인인 무명의 파괴를 인도하는 것이 바로 통찰지입니다. 부처님의 경우에 이는 정등각자(samma-sambuddha)의 특성을 뜻합니다. 정등각자는 사성제를 바르게, 철저하게, 독자적으로 아는 분입니다. 여기서 연기의 12가지 각지는 사성제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늙음과 죽음은 모두 첫 번째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뜻하고 재생은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集諦]를 뜻합니다. 이 원인과 결과의 소멸은 소멸의 진리[滅諦]를 뜻하며, 이 소멸을 아는 지혜는 소멸에 이르는 도의 진리[道諦]를 뜻합니다.
재생과 업의 원인, 업의 원인과 집착[取], 집착[取]과 갈애[愛], 갈애[愛]와 느낌[受], 느낌[受]과 감각접촉[觸], 감각접촉[觸]과 여섯 감각장소[六入], 여섯 감각장소[六入]와 정신-물질[名色], 정신-물질[名色]과 식(識), 식(識)과 상카라[行], 상카라[行]과 무명(無明)도 이와 같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바로 직전에 선행하는 연결고리를 원인, 즉 일어남(samudaya)이라 하고, 그 직후에 바로 따라오는 것을 그 결과, 즉 괴로움의 진리[苦諦]라고 합니다.
우리가 만약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 존재의 번뇌[有漏], 사견의 번뇌[見漏], 무명의 번뇌[無明漏]에 대한 집착들인 번뇌(漏 āsava)220의 결과로 본다면, 심지어 윤회의 근원인 무명도 괴로움의 진리[苦諦]와 같은 뜻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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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번뇌(漏)로 옮긴 āsava는 ‘흐르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뜻에서 마음속의 해로운 상태나 더러움이 외부로 표출되는 뜻으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루(漏), 번뇌(煩惱)로 옮겼고 서구에서는 influxes, 또는 좀더 정확성을 기하고자 할 때는 canker, taint로 옮긴다.「아따살리니」(Asl.48)에 따르면 이것을 흘러나오는 것이란 뜻인 아사와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하는 것으로는 최고로 높은 세계까지 흘러가고 법으로는 종성(種姓 gotrabhu)의 영역에까지 흘러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번뇌(漏)에는 네 가지가 있다.
①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 kāmā-āsava) ② 존재의 번뇌(有漏 bhava-āsava) ③ 사견의 번뇌(見漏 diṭṭhi-āsava) ④ 무명의 번뇌(無明漏 avijjā-āsava)
그리고 이 네 가지 번뇌(漏)는 네 가지 폭류(ogha)와 네 가지 속박(yoga)이란 이름으로도 경전과 주석서에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육신통(六神通)중의 하나인 누진통(漏盡通 āsavakkhaya-sutta)이 바로 위빠사나를 통한 통찰의 힘으로 이러한 모든 번뇌(漏 āsava)를 부순 지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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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갈애를 괴로움과 동일하게 보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상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갈애를 포함한 모든 정신-물질[名色]은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관점은 타당합니다. 주석서는 무명을 괴로움이라고 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명은 번뇌[漏]에서 흘러나오는 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번뇌(漏 āsava)에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 존재의 번뇌[有漏], 사견의 번뇌[見漏], 무명의 번뇌[無明漏]라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무명과, 또 현재에 무명을 일으키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번뇌[漏]를 무명의 원인으로 볼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성제를 깨닫고 열반을 증득하시고 나서 스스로의 바른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님께서는 정등각자(Sammā-sambuddha)라는 비할 바 없고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부처님은 연기법이 포괄하는 모든 현상들은 진정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부처님은 무명에서 깨어나셨으며, 집착이 없어졌으며, 모든 족쇄221에서 해탈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청정도론」에 따르면, 윤회의 모든 바큇살을 완전히 파괴하셨기 때문에 아라한이라고 불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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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족쇄는 빨리어 삼요자나(saṃyojana)의 역어로 범부를 윤회의 바퀴에 붙들어 매놓는 10가지 족쇄를 말한다. ①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 ② 회의적 의심(vicikicchā) ③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 sīlabbata-parāmāsa) ➃ 감각적 욕망(kāma-rāgā) ➄ 적의(paṭigha) ➅ 색계에 대한 집착(rūpa-rāga) ➆ 무색계에 대한 집착(arūpa-rāga) ➇ 자만(māna) ➈ 들뜸(uddhacca) ➉ 무명(無明 avijjā). 그리고 ①부터 ➄까지는 다섯 가지 거친 족쇄(orambhāgiya-saṃyojana)인 오하분결(五下分結)이라 하고 ➅부터 ➉까지는 다섯 가지 더 미세한 족쇄(uddhambhagiya-saṃyojana)로 오상분결(五上分結)이라고 한다. 예류자는 ①에서 ③을, 불환자는 ➃와 ➄를, 아라한은 나머지 ➅에서 ➉까지의 족쇄를 완전히 끊어낸다. 족쇄의 영역은 f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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