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스님의 모습을 지울 수 없어
오직 저 하늘에 스님의 모습을 새길 뿐입니다.

도안스님께서 이곳에 남기신 업적을 살피면서,

한미불교봉사회 설립자 - 도안 스님 전법(포교)행적 소개

75년부터-84년까지(1)

<올린 글 목록 보기 - 크릭>

<지금으로부터 37년전 관음사는 어떻게 발전을 했을까, 그때를 사진설명으로 되짚어 본다>

78년 3월 12일 김자운 대종사①, 78년 10월 1일과 79년 3월 11일은 손경산 대종사②, 80년 2월 3일 박완일 서울신도회장③, 80년 5월은 고암 대종사(전 조계종 종정), 이능가대선사, 무진장스님, 이종익박사, 박성배교수, 김하태박사,김구산교수, 김철교수가  관음사를 방문④, 80년 9월 23일 - 한국의 날 퍼레이드 행사에 관음사 꽃차 참가 - 열렬한 환영받음⑤. (사진 위 차례대로)


LA관음사 11면 관세음보살상은 어떻게 모셔졌을까.

1981년 7월 1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전국신도회 후원으로 나성불교문화회관에 봉안할 11면-관세음보살상 이운법회를 신도 및 귀빈 2천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조계사법당에서 성대하게 치룬 기념법회가 있었다. 이 11면-관음보살상 이운식은 제9회 불교미술전람회(80년10월22일-11월4일 총무원불교회관)에서 최고상(종정상)을 수상한 김홍복, 이명진씨의 역작인바. 작가들의 기증동의(김안수; 81년 4월 중순경 당시 국제불교도협의회 사무실로 찾아온 총무원 장무익 과장이 모셔갈 곳을 알선해달라 부탁을 했었는데, 작가를 직접 만나서 의론합의)를 받게되어 곧바로 도안스님께 이운해 가도록 연락을 취하게 되어, 도안스님이 반갑게 모셔가게된 행사였다. 이들 작가는 그 뒤 이 인연공덕으로 각 사찰로부터 불상조성 주문을 많이 받게 된 기연을 알려왔다.<한편 이 불상은 부산에서 배편으로 LA롱비치항으로 이운되었는데, 그때 롱비치에서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관음사까지 이운한 트레일러가 이를 싣고 왔는데, 트레일러 앞바퀴가 둘 중 하나가 없이 불상은 뒤편 바퀴쪽으로 미끄러져 옮겨지어 안전하게 모셔진 채 도착된 것을 목격했던 관음사 용택스님이 확인을 하게 되어 모두들 놀랐던 일, 신비했던 일이 전해지고 있는 11면 관세음보살님이시다.(왼편 사진)


 

<종성>

도안스님 1962년3월1일(25세때) 작시

적막한 대지에 떨어지는 소리, 아쉬운 선잠에 눈비비는 소리,
들렸다 흐렸다 삭-풍- 넘어로, 악몽의 지름길 일러주는 소리,
창넘어 달빛아 날따라 가자, 황금의 은반이 웃음을 담고, 티없는 밝음에 너를 맞이하리니,
만상의 거울을 닦지 않아도, 너는 그 빛이 더욱 빛을 내어, 어둠이 가신 여운만이 충만하구나,
어둠이 가신 대지 위에는 여운만이 충만하구나....

<도안스님 시편에서>

<紅葉十月>

도안스님 1961년10월20일(24세때) 작시

<貞陵山寺에서>

强風에 못 이겨서
한 떨기 붉은 꽃이 되여
얼띤 4월을 回想하며
연 붉은 낯을 붉히시나이까?
5월의 薰風이 나를 저버리고
過客의 10월이 덮쳐 앉을때
싱싱한 나의 全身은
거센 暴風雨에 빛을 잃고
紅葉의 微笑로
당신의 가는 길에 한잎두잎
걸음을 멈추게 하오리다

<도안스님 시편에서>